타코와 거짓 예언
저는 어제, 늦은 밤까지 일하다 보니 저녁 식사조차 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마침 환하게 불을 밝힌 타코 트럭이 눈에 들어와 차를 세웠습니다. Carne Asada, 소고기 타코 두 개를 주문했습니다. 가격은 개당 4달러였습니다. 이 타코는 크기가 아주 작아서, 양이 적은 사람도 최소 세네 개는 먹어야 겨우 배가 찰 정도입니다. 그런데 왜 두 개만 시켰냐고요? 생전 처음 가본 곳이라 맛이 어떨지도 몰랐고, 무엇보다 타코 두 개만 해도 한국 돈으로 만 원이 넘는데, 선뜻 더 주문하기에는 금액적으로 부담스러웠기 때문입니다.
문득 San Diego 에서 carne asada 타코를 개당 1달러에 사 먹을 수 있었던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제 아이들이 십 대였을 때의 일이니 그리 먼 과거도 아닙니다. 불과 10년도 채 되지 않은 과거에는 1달러였던 타코가 이제는 번듯한 식당도 아닌 길거리 노점에서 4달러에 팔리고 있는겁니다. 공식 통계로 발표되는 물가상승률과 우리가 일상에서 직접 경험하는 체감 물가 사이에는 상당한 괴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타코가 만들어지기를 기다리며 주변을 둘러보다가, 스페인어로 적힌 성경 구절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자주 인용되는 예레미야 29장 11절이었습니다.
“For I know the plans I have for you.” (나에게는 너에 대한 계획이 다 있다.)
11절 전체 :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1. 예레미야 29장 11절은 즉각적인 구원을 약속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많은 크리스천은 이 구절을 하느님께서 자신을 어려움에서 건져주시고, 마침내 형통한 길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약속으로 받아들입니다. 당장 직장이 필요할 수도 있고, 억울하게 형사 고발을 당하거나 법적 분쟁에 휘말려 있을 수도 있습니다. 경제적 어려움이나 가정의 문제로, 아니면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에게도 이 말씀은 큰 위로와 희망이 됩니다.
물론 하느님께서 자기 백성을 향해 선한 뜻을 가지고 계신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하느님께서 우리가 원하는 문제를 원하는 시기에 해결해 주시겠다는 약속으로 해석한다면, 본래의 문맥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예레미야 29장의 배경을 살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유다 백성은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고국을 떠나 낯선 땅에서 살아야 했으며, 예루살렘의 회복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일부 거짓 선지자들은 포로 생활이 곧 끝나고 바빌론의 압제가 머지않아 무너질 것처럼 백성에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해 정반대의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백성은 당장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땅에서 집을 짓고 밭을 일구며 살아가야 했습니다. 그들의 회복은 사람들이 기대하던 시점보다 훨씬 더 먼 미래에 있었습니다.
“나 야훼가 말한다. 너희가 바빌론에서 칠십 년을 다 채운 다음에야 약속대로 나는 너희를 찾아가 이 곳으로 다시 데려오리라.” (예레미야 29:10)
하느님께서는 분명히 회복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회복은 즉각적인 구원이 아니라 70년이라는 긴 시간을 거쳐 이루어질 일이었습니다.
예레미야 29장 11절의 희망은 고난이 곧 끝난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고난의 시간이 길어지더라도 하느님의 계획이 실패한 것은 아니라는 뜻이었습니다.
우리가 이 차이를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느님의 약속을 믿는 것과 하느님께서 반드시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내가 원하는 시기에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기 때문입니다.

2. 하느님께서 주시는 희망은 언제나 빠르고 편한 해결책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엉망진창인 상황에 놓여 있다면,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향한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하지만 그 계획이 반드시 오늘의 고통을 내일 끝내 주거나, 현재의 문제를 순식간에 해결해 주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기다려야 합니다. 때로는 당장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을 견뎌야 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우리가 기대했던 것과 전혀 다른 길을 지나가야 할 수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70년의 포로 생활은 하느님의 약속이 무효가 되었다는 증거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하느님의 계획이 인간의 조급함이나 기대에 좌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역사였습니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다. 나의 길은 너희 길과 같지 않다.” 야훼의 말씀이시다. “하늘이 땅에서 아득하듯 나의 길은 너희 길보다 높다. 나의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다.” (이사야 55:8,9)
믿음은 하나님께 우리의 시간표를 강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내 뜻대로,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내 욕망대로 이루어지게 해주소서’ 라고 요구하며, 그것을 ‘기도’라고 부릅니다.
아니요, 믿음이란,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시간 속에서도 하느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3. ‘부의 이동(Wealth Transfer)’ 이라는 달콤한 거짓말
그런데 오늘날 개신교인들을 둘러보면 예레미야 29장 11절의 본래 의미를 무색하게 만드는 주장들이 넘쳐납니다.

특히 이른바 ‘부의 이동(Wealth Transfer)’을 외치는 일부 설교자들과 예언 사역자들의 주장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 께서 믿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재정적 보상을 주실 것이며, 세상에 속한 악인들이 소유한 부가 이제 ‘하나님의 백성’ 에게 옮겨올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어떤 이들은 비트코인을 비롯한 특정 자산이나 금융시장의 급격한 상승을 그 증거로 제시하기도 합니다. 마치 ‘하나님’ 께서 자신들의 예언을 통해 성도들에게 막대한 부를 안겨 주실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 보겠습니다.
부유한 사람은 모두 악하고, 가난한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경외하는 의인이라는 뜻입니까?
도대체 이런 주장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입니까? 돈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를 악인으로 규정하고, 신앙을 고백한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가 막대한 부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까?
성경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습니다.
물론 성경은 부당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하거나 가난한 사람을 착취하는 행위를 엄중하게 경고합니다. 그러나 모든 부자를 악인으로, 모든 가난한 사람을 의인으로 분류하지는 않습니다. 부의 많고 적음이 그 사람의 영적 상태를 자동으로 결정하는 것도 아닙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주장이 신앙과 재정적 이익을 노골적으로 결부시킨다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 을 믿으면 특별한 부를 얻게 되고, 자신들의 예언을 믿으면 경제적 대역전이 일어날 것이라는 식의 메시지는 사람들의 탐욕을 자극하기 쉽습니다. 조용기 목사가 믿던, 여러분들을 부자로 만들어준다던 ‘하나님’ 을 믿지 마시고,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삭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 야훼를 믿으십시오.
4. 성경은 돈을 이용해 경건을 팔아넘기는 자들을 경고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문제를 매우 분명하게 지적했습니다.
부자가 되려고 애쓰는 사람은 유혹에 빠지고 올가미에 걸리고 어리석고도 해로운 온갖 욕심에 사로잡혀서 파멸의 구렁텅이에 떨어지게 됩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 돈을 따라다니다가 길을 잃고 신앙을 떠나서 결국 격심한 고통을 겪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6:9,10)
바울은 마음이 부패하고 진리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경건을 이익의 수단으로 생각한다고 경고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바울이 단순히 돈이 많은 사람들을 비판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는 신앙과 경건을 돈벌이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태도를 문제 삼았습니다.
하느님의 이름을 내세워 사람들의 기대와 욕망을 자극하고, 신앙을 통해 재정적 이득을 얻을 수 있다고 선전하는 행위는 결코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께서 엄청난 부를 옮겨 주실 것이라는 예언을 들었을 때, 우리는 무엇을 먼저 살펴봐야 하겠습니까? 그 메시지가 정말 성경의 가르침과 일치하는지, 아니면 우리의 탐욕을 자극하는 달콤한 약속에 불과한지를 분별해야 합니다.
잠언 28장 20절은 이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경고합니다.
꾸준한 사람은 많은 복을 받지만 벼락 부자가 되려는 사람은 벌을 받고야 만다. (잠언 28:20)
“꾸준한 네 좋아요.” It’s me 가사 중.
성경은 성실함과 꾸준함을 강조합니다. 반면에 조급하게 부자가 되려는 욕망은 위험하다고 경고합니다. 그런데도 일부 설교자들은 마치 하나님께서 특정한 시기에 신자들에게 막대한 부를 나누어 주시기로 약속하신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성경의 일부 구절을 인용하지만, 정작 그 말씀의 전체적인 문맥과 성경이 일관되게 가르치는 원칙은 외면합니다.
도대체 분별력은 어디로 사라진 것입니까? 여러분들에게는 이런 주장에 내재한 모순이 보이지 않습니까?
5. 진리를 분별하는 눈을 잃지 마십시오
저는 이러한 주장들이 단순히 성경 해석의 차이에서 비롯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돈에 대한 인간의 탐욕이 신앙의 언어를 빌려 자신을 정당화할 때, 사람들은 거짓된 희망을 진리로 받아들이기 쉽습니다.
특히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는 사람들에게 ‘부의 이동(Wealth Transfer)’이라는 메시지는 매우 매력적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고생해 온 자신의 삶이 마침내 역전될 것이라는 기대, 남들이 누리는 부를 자신도 곧 얻게 될 것이라는 희망은 누구에게나 강한 유혹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간절히 원하는 메시지라고 해서 반드시 하느님께서 주신 말씀인 것은 아닙니다.
예레미야 시대에도 백성들은 포로 생활이 곧 끝나기를 원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바로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반면 예레미야는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지 않는 진실을 전해야 했습니다. 회복은 오겠지만, 그때까지는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의 이름을 언급한다고 해서 모든 예언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 구절을 인용한다고 해서 그 해석까지 자동으로 정당화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은 자기가 성령을 받았노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다 믿지 말고 그들이 성령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과연 하느님께로부터 온 것인지 아닌지를 시험해 보십시오. 많은 거짓 예언자가 세상에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4:1)
우리는 모든 주장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사람이 아니라, 성경의 말씀에 비추어 그 진위를 분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미래와 희망을 약속하셨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희망을 우리의 탐욕을 채워 줄 재정적 대박이나 손쉬운 인생 역전으로 축소해서는 안 됩니다.
예레미야 29장 11절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즉시 얻을 수 있다는 보증서가 아닙니다. 오랜 고난 속에서도 하느님의 계획과 약속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에게 권면하고 싶습니다.
하느님의 약속을 믿되, 하느님의 이름을 빌려 탐욕을 부추기는 사람들의 말까지 믿지는 마십시오. 달콤한 예언보다 성경의 진리를 붙들고, 눈앞의 재정적 이익보다 하느님 앞에서의 정직함과 충성을 우선하십시오.
돈은 우리 삶에 필요한 수단이지만, 우리의 믿음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부자가 되겠다는 욕망이 하느님의 뜻을 분별하는 눈을 가리게 해서는 안 됩니다.
진정한 믿음은 하느님께서 반드시 나를 부자로 만들어 주실 것이라는 확신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더라도 하느님의 말씀을 붙들고 진리 안에 서는 데 있습니다.



아멘.
평생을 하나님, 주님으로 불러와서 Yahweh가 입에서 많이 어색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기도할 때 Yahweh 불러보겠습니다. Jehovah도 괜찮지요? 하느님은 정말 어렵습니다…. 예수님을 많이 부르게 될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부자가 될 타입은 아닌 것 같습니다. 왜냐면 목돈이 생길 때마다 항상 미션이 따라왔기 때문에 부자가 되면 바빠지겠죠. 제게 맡겨진 미션만큼만 딱 채워주셔서 성공적으로 완수하게 되면 이후로는 지금처럼 평범하게 가정천국 이루며 살다가 하늘나라 가기를 원합니다.
맥스 선생님, 부르심에 충실하시고 늘 힘내세요. 응원드립니다.
음... 저는 라떼님이 부자가 되느냐 마냐 하는 문제 따위는 이미 초월하신 분이라 생각했는데, 제가 잘못 생각한걸까요?
부자가 될 것 같다, 혹은 되지 않을 것 같다 같은 생각 자체를 비워보시는 건 어떨까요?
하나님께서 나를 부자로 만든다 한들 거기에 마음이 들뜰 일도 아니고, 나를 가난하게 두신다 한들 그것을 서운하게 여길 이유도 없을 테니까요.
그저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와 미션에 감사하며 나아가는 것이 전부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저도 제가 초월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지금이 제 인생에서 제 기준 가장 풍족한 시기라서 만족도가 최상이거든요! 그동안 얼마나 없이 살았는지….ㅠㅠ 다만 생체칩 거부하는 때에 다시 가난해져도 살아갈 자신이 있고, 목베임 당해 죽을 자신도 있지만 부자로 사는 건 잘 상상이 안됩니다. 안 되어봐서 기분을 모르니 그래서 부의 이동 이런 말이 안 들리네요. 먼 얘기
같고.
네, 말씀대로 저의 생각은 모두 비우고 늘 하루하루 감사하며 맡겨주신 것 해 나가며 살아가겠습니다. ^^
Rivers of babylon노래가 생각났네요. 부를 쫓고 있는 우리가 향하는 곳이 바빌론의 강가가 안되길 기도합니다.
생존 때문에 그리고 자본가에 치이기 싫어서 부를 쫓고 있지만
지난 언급된 다보스포럼에서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하지만 행복해 질 것이다에 대해 (생존과 치이는 것만 해결 된다면) 전 그것도 괜찮지 않을까란 생각을 합니다. 부자가 천국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 라는 구절이 있듯이 자기 기준 이상 커져가는 부에 따라 나누고 싶은 마음은 작아져만 갑니다.
'하늘은 높을 수록 마음은 더욱 작아지네'天越高, 心越小 영화 동방불패2 ost소홍진 가사 중
Rivers of Babylon - 제가 이 노래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지만, 알고 있다는.... ㅋㅋㅋ
https://www.youtube.com/shorts/4JiNw9iLplk
AI 영상이 여가수 춤을 완전 잘 따라하네요. 대만에 출장 왔는데 이전에 맥스님 대만 전쟁이 안난다는 것 때문에 대만사람 대하는 것이 맘이 편해졌어요. 이 사람들이 나중에 중국에 굴복하더라도 괜찮으니 사람들이 안 다쳤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 아직도
부는 악이고 가난은 선이라는 기준이
남아 있는 것을 봅니다.
유교 문화권에서 청빈을 덕으로 여기던 영향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을 만나본 것은 아니지만,
저의 경우에는 믿는 자든 믿지 않는 자든
부자들 중 상당수가 겸손하고 따뜻하며
배려심이 깊음을 봅니다. 부나 권력은
그 사람의 본래 모습을
더 크게 만든다는 말이 있는데
많은 부자들이 겸손하고 따뜻하며
사랑이 있었기에 돈도 자연스럽게 따라오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겠지요
혹 부의 이동이 있다해도 자신이 부의 이동을 받을
자격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하는 크리스천들은
이미 그 마음자세에서 자격이 있을까 의문이 듭니다.
주님과의 친밀한 관계속에서
돈이 아닌 주님을 항상 주인자리에 모실줄 알고
맡겨진 재물을 잘 운용할줄도 알고
포모나 페닉셀같은 류에 휩쓸리지 않고
잘 관리할줄도 알고 잘 쓸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끼 싶습니다.
아니 형님, 딴 얘기 죄송하지만 김정은 사망했다던데 거짓입니까? 분별 부탁드립니다. 김정은 사망기원! 북한 핵무기, 인민 전부 남한으로 이동 기원!
ㅋㅋㅋ 김정은이 지금 왜 죽어요? 제가 알고 있는 시기 상 전혀 맞지 않습니다.
죽기보다 자리에서 쫒겨나는 시기 (김씨 왕조가 몰락하는) 가 오는데, 지금이 아닙니다.
아이고 저런.. 뒤졌다해서 살짝 설렜네요. 정으니 점마도 미래가 정해져 있는건가요?
2년전에도 착동에서 말씀드렸었지만,
김씨왕조는 김정은에서 끝납니다. 그 끝이 멀지 않았습니다.
김씨왕조 세력은 권력을 여자에게 물려주려 하지만 (2년전 그 여자의 모습이 뚜렸하지 않았는데, 권력을 공유하는 형태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뚜렸하게 보이지 않은 것 같아요) 실패로 돌아갑니다.
김씨왕족 몰락후 남북통일로 바로 이어지지는 않고, 일단 군부가 권력을 잡습니다.
저는 저희 집안 종손이고 강원도 철원땅 에 조상대대로 내려오는 대략 여의도 크기의 농지가 있습니다. 휴전선 바로 넘자마자 있는 땅입니다. 통일이 되면, 당장 통일정부를 상대로 이 땅에 대한 소송을 제기해서 보상금을 받던가 땅을 돌려 받던가 해야해서, 북한문제는 저에게도 지대한 관심사 입니다.
남한땅에 미사일이 떨어진다고 하셨는데,
경기도 어디라고.. 김포에 살고있는데 혹시 이사를 가야하나요..
맥스님 북한 김씨왕조가 무너지면 한국 내에 존재하는 종북정치인들도 같이 끝나나요?
주님께서 특정 사람을 가난하게 만들수도 있고 부유하게 만들수도 있나요? 주님은 인간사에 아무 참견 안하신다고 하시지 않았나요? 헷갈리네요...
야훼께서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신다. (사무엘 상 2:7)
라고 성서에 기록되어 있지만, 그분의 개입하심을 느낄수도 느끼지 못할수도 있습니다.
하느님의 개입은 인간의 일거수일투족을 간섭하시는 것이 아니라, 구속사의 큰 흐름 속에서 이루어지는 거시적인 개입입니다. 이는 단순히 세상적인 번영이나 세상일에 치중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적인 영적 영역을 변화시키고 이끄시는 개입입니다.
"성경에 비추어 그 진위를 분별"하기 어려운 예언에 대한 판단/대처가 중요하겠습니다. 예를 들어, 교황 선종이나 윤 대통령 탄핵 기각처럼 개인적 이익과 무관하나, 확신했던 예언과 다르게 발생했던 건들 몇 건만 되짚어보며 회고해보아도 말하는 사람, 듣는 사람 모두 앞으론 혼돈이 줄고, 보다 성숙하고 발전된 모습으로 갈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마음이 흔들릴 때 잡아주셔서 감사합니다.